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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영이노베이터] 코스토리 김한균 대표 인터뷰
  • 이름 STEPI ERT
  • 작성일 2016.12.28 15:59
  • 조회수 2,314

Q. 코스토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됩니까?

A. 제가 화장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저한테는 스킨을 바르고 로션을 바르고 아이크림을 바르는 게 습관이었고, 그것 자체를 좋아했기 때문에 19세 때부터도 화장품 매장에서 판매 일을 많이 해 보게 되었지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처음부터 화장품과 관련한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저는 제가 가진 뷰티 관련 지식을 방송 쪽과 관련하여 풀어나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8년도에 화장품 회사인 아모레퍼시픽에 입사를 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인 이니스프리, 에뛰드 등에서 화장품 업계와 관련한 일을 배우고, 또 회사가 진행하는 마케팅 실무 등에 대해서 배우고, 유통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서 그루폰 코리아에 멤버로 들어가서 웹에디터로 6개월 정도 일을 해 보았어요.
이후 회사를 나와서 남자 화장품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혼자서 일을 다 하다 보니까, 100만 원만 있어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 저한테 아기가 생기게 되면서, 아기에게 보습제 기능을 할 유기농 오일을 한번 만들어보자 싶어 파는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제 아기가 쓸 것을 30병만 만들어 봤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이미 제가 화장품 잘 쓰는 남자로 ‘화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했고, 네이버에 남성 뷰티 파워블로거로 선정되는 등의 상황이 있었습니다. 이쪽 분야에서는 대중적으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긴 상태였었죠. 홍보에 관하여는 이런 식으로 진입 장벽이 조금은 낮아져 있는 상태였는데, 블로그를 통한 판매가 생각보다 잘 되는 현상에 주목하여 원래 계약을 했던 곳과 계약기간이 끝나는 시점에서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후 내 아이템으로 상품을 기획하고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처음에 유기농 오일 30병을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A. 오일이라는 것은 연구실에서도 소량 생산이 가능한 것이고, 큰 가마를 이용한 공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고, 유기농 오일 성분만으로 정말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어 사업 아이템으로 선택했습니다. 또한 화장품의 제조 단가가 만 원을 넘는 것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제가 만드는 파파레서피의 오일은 제조 단가가 만원이 넘을 정도로 비싼 제품입니다. 그런데도 생산이 가능했던 이유는, 화장품 관련 연구소 소장님과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Q. 그 연구소 소장님과의 인맥은 어떻게 형성되었나요?

A. 소장님이 젊은 친구가 뭔가 해보겠다고 하니까, 이런저런 도움을 주신 것이지요. 그 연구소 사람들이 유기농 오일 30병을 만들어준 것은 아니고, 그 연구소의 장비들을 활용해서 제가 만들어 볼 수 있었습니다.


Q. 원래 저자극, 친환경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많았나요?

A. 화장품에 정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꼭 사용하지 않는 화장품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지나가다가 안 써 본 제품을 보면 한 번씩 써보고 했으니까요. 한 달에 백만 원 이상씩 화장품을 구매하기도 하던 때가 있었죠. 그렇게 많은 화장품을 섭렵하다 보니까, 어느 날 문득 느낀 점이 생겼어요. 화장품 제품 성분표를 보고 있는데, ‘이건 첨가물로 들어가기에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싶은 성분이 있는 경우도 있었죠.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서 저자극이나 친환경 화장품을 내 스스로 만들어 보게 된 것이죠.


Q. 유기농 오일에서 다른 상품의 확장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A. 유기농 오일의 제조 수량이 순서대로 30병, 50병, 200병, 500병 이렇게 나가는 것을 보게 되니까, 시장 수요의 범위를 어느 정도 알겠더군요. 그 다음에는 청소년 여드름 토너 이렇게 나갔지요. 블로그에서 판매하는 홈페이지를 홍보했습니다. 이런 상품군을 판매하려면 사업자등록증을 내야 했었고 또 식약청에 신고하여야 하는데, 저 스스로가 제조판매관리 인가를 받은 사람이었고 아마 우리 또래에서 화장품 벤처를 하는 사람 중에는 이렇게 제조 인가를 허가받은 사람은 굉장히 드물 겁니다.


Q. 남자를 대상으로 한 콘텐츠가 있는 블로그를 운영하는데, 유아용 오일로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A. 제 블로그가 ‘남자 뷰티 1호 파워블로거’의 블로그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곳에 업로드 하는 콘텐츠 중에는 저의 일상 내용이 있고, 아이를 키우는 일화들을 계속 올리던 중이었기 때문에, 저의 블로그를 구독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제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의 내용이 전달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남자가 자기 아이를 위하여 화장품을 직접 만든다는 철학을 블로그를 통해 보여드리고자 했던 의도가 사람들의 마음에 반영이 잘 된 것 같습니다. 거의 10년간에 걸친 저의 인프라가 파파레서피가 잘 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죠.


Q. 어떻게 해서 영향력 있는 파워블로거가 되었나요?

A.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에 뷰티를 테마로 블로그를 하는 ‘남자’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자 뷰티 블로거 하면 ‘김한균’ 말고는 떠오르는 이가 없는 상황이었죠. 탑클래스는 아니지만, 퍼스트 무버이기는 했죠. 그 덕분에 ‘1세대 뷰티 블로거’라는 수식이 항상 따라 붙었고, 대중에게도 그렇게 각인이 되었네요. 그리고 제가 화장품을 굉장히 많이 써보는데, 그런 활동을 통해 얻은 정보나 지식들을 사람들과 공유를 하고 싶은 욕구도 생겨서 블로그를 시작하였죠. 상위 블로그로 등극하는 과정에서 마케팅적 노하우 등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블로그 덕분에 김한균이라는 사람이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Q. 파파레서피에서 다른 브랜드로 확장하는 계기가 된 것은 무엇인가요?

A. 파파레서피는 아직도 안정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데, 그간 파파레서피 외에도 7개를 시도했지만, 3개 브랜드만이 계속해서 사업으로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쇼핑몰이 4개가 운영되고 있는데, 어떤 것은 한 달 매출이 2~3백만 원도 안 되는 것이 있고, 또 어떤 것은 4~5억 하는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1천만 원 하는 것도 있는 식으로 다 각기 다릅니다. 파파레서피 외에 다른 브랜드가 있는 이유는 립스틱이나 쿠션 같은 화장품 제품들은 파파레서피를 통해서 할 수가 없는 제품군입니다. 이럴 때는 INGA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거기에 새로운 스토리를 입힙니다. ‘I’m Not Girl Anymore’ 줄여서 INGA라고 하는 브랜드는 파파레서피를 이용하는 어린 아이가 ‘아빠 난 더 이상 애가 아니야. 더 이상 간섭하지마’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지요. 마케팅이나 프로모션도 이런 스토리와 관련하여 기획을 합니다.


Q. 화장품 회사에서는 어떤 일들을 했으며, 그 경험이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A. 브랜드 매니저라고 해서, 제품 관련 기획을 하기도 하고, 온라인 마케팅, 대학생 서포터즈 관리, PR, 커뮤니케이션 쪽으로 많은 일을 했습니다. 화장품을 좋아하니까, 화장품 사업을 바로 시작해봐야지 했던 것이 아니라, 화장품 회사에서 밑바닥부터 영업에 대한 일을 많이 해보고, 회사의 조직에 대한 것을 많이 익혔습니다. 그러면서 회사 규모의 일 중에서는 혼자서 오롯이 다 잘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이 없다는 것, 특히 유통에서도 그렇다는 것을 깨우쳤고, 각각의 상황에 어떤 지원들이 필요한지를 많이 알게 되었어요. 그때 느낀 바를 바탕으로 저의 사업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들을 염두에 둘 수 있었습니다.
한편 제 학사 전공이 광고학이고 부전공이 메이크업인데, 저는 우리나라에서 취득 할 수 있는 피부와 관련한 자격증은 다양하게 취득했습니다. 또한 중앙대학교 의학식품 대학원의 향장산업학과를 다니게 되면서, 실무와 논문 작업을 통해서 이론과 실무의 지식과 경험을, 또 인맥 관계 등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잡지에서 인터뷰를 많이 하면서, 생긴 인맥 또한 우리 회사 제품 리뷰에 대한 후기나 기사로 나올 수 있는 콘텐츠적인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Q. 대표님의 조직에 대한 철학이 어떠한가요?

A. 최고의 인재를 뽑는 것은 우리 중소기업에서는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 과장급에 해당하는 대우를 해줄 만한 정도의 자본력이 없고, 또 그만큼의 인건비에 대한 위험 감수도 어렵지요. 그러나 우리 회사에 잘 맞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확실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최고의 인재는 아니더라도 최적의 인재로 만들어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가지 기본적인 사항을 알려주고 잘 할 때까지 기간을 주되 그 기간이 짧게 마무리되도록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일을 잘 할 수 있게 되면 다시 또 투자를 하는 것이지요.
한편 우리 직원들이 회사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으니까 최소한 회사에 있는 시간 동안은 좋은 장비와 좋은 환경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을 줄곧 합니다. 그래서 요즘 회사 일에서 제일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원주에 있는 사옥을 잘 짓는 것이에요. 이전에 회사를 다니면서 느꼈던 직원에 대한 대우에 대해서 더 좋게 하겠다고 다짐한 부분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죠.


Q. 코스토리가 현재 외부 투자 없이 사업을 일궈나가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단순하게 제 주식을 팔아야 되는 투자라면 저는 무조건 투자를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만약 유럽의 화장품 기업인 에스티로더에서 우리나라 화장품 회사인 닥터자르트에 800억 원을 투자한다면 승낙할 것 같습니다. 800억 원이라는 매우 큰 돈 때문이 아니라, 에스티로더의 인프라를 보고 하겠다는 것이에요. 중국에서 만약 저에게 200억 원을 줄 테니, 경영권을 유지하고 계속 일을 해 달라고 하는 식이라면, 저는 그 투자를 받지 않을 거에요. 그 200억 원 때문에 업의 본질이 흐려질 것 같거든요. 아직은 제가 일을 해야 할 때이고, 또한 글로벌 탑 100브랜드를 생각하고 있는 비전 또한 있기 때문이에요.
투자를 받는다는 것이 사업체를 내 마음대로 꾸릴 수 있고, 직원도 내 마음대로 채용할 수 있는 것이 보장이 되는 투자라면 상관이 없는데, 저 개인적으로 첫 번째 투자를 받았을 때 느낀 문제가 있었어요. 첫 투자를 한 회사에서는 제가 그 회사에 들어가서, 그 동안 쌓아온 저만의 인프라를 활용하여 회사를 위해 일을 하는 형태였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 회사에 들어갔을 때, 제가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는 남자 BB 크림 관련 문제였습니다. 저의 이름을 걸고 BB 크림을 판매했는데 정말 많은 양을 판매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150만원 가량 밖에 안 되는 월급을 받았죠. 게다가 영업 직무 같은 것도 제가 다 소화해 내야 하는 형태였어요. 그런 경험이 일을 하면서 굉장히 힘들었는데,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니까 꾹 참고 계속 일을 했습니다. 결국 계약 기간이 끝날 무렵에는 회사를 나와서 독자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덧붙여, 창업 당시에 다행히도 아빠가 만든 레시피, 즉 ‘파파레서피’라는 상표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빠가 만든 화장품’이라는 철학을 담은 회사를 만들어 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Q. 대표님의 투자 유치에 대한 철학이 생기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A. 유년시절에는 부모님이 카센터를 하시면서 부유하게도 살아보고, 또 굉장히 돈이 없이도 살아봤어요. 사업을 하면서도 통장에 이게 돈인가 싶기도 할 정도로 많은 돈이 들어와 본적도 있고요. 반면, 당장 내일이 직원들 월급날인데 통장에 2~3천원 찍혀 있는 날도 있었고,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서 밤에는 알바도 하기도 했지요. 돈이 많음과 적음에 따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정말 행복하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제가 만든 브랜드를 알아봐 주는 것을 통해 그런 행복을 느낄 수 있는데, 제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주변 친구들이 절반은 파파레서피의 제품을 사용하는데, 친구들로부터 그 파파가 너네 아빠야?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을 상상하며 현실로 만들고자 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지금처럼 사업체를 하면서도, 언젠가는 교수직을 겸임하리라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창업에 대한 지식을 전달해주고 싶어요.


Q. 사업 성공의 확신을 가진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A. 사실 지금까지도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해요. 이제 5년차이지만 아직도 불안하고, 다행히 빚이 있고 대출이 있거나 하는 상황은 아닌데 언제 어떻게 이 회사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랄까... 그럼에도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코스토리라는 회사에서 글로벌 탑 100 브랜드를 하나 만들자하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요. 지금도 투자나 상장 얘기도 조금씩 나오고 있긴 한데, 그걸 했을 때 제가 얻는 메리트는 무엇인지 제가 감수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지 많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제가 화장품을 좋아하니까 이 일을 시작 했다는 것이 6~70%라면, 지금은 어떻게 경영을 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더 많이 하고 있어요. 그래서 박사과정으로 MBA를 계속 더 다니고 있는 것이고요.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퇴근이 새벽 3~4시가 일상이 된 것이고요. 회사가 조금이라도 잘 되고 있을 때, 지킬 건 지키고 성장은 하려고 노력합니다.


Q. 코스토리의 인원 충원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A. 혼자서만 일을 한 기간은 3개월 정도 입니다. 그 다음에는 제가 전문적으로 할 수 없는 웹디자인 같은 상품 디자이너들을 먼저 뽑기 시작했고, 그 다음 택배 발송 같은 물류를 도와줄 사람을 충원하기 시작했고, 마케팅 인력을 충원하는 식으로 세부적인 직무의 인력을 충원하기 시작했죠. 일을 맡겼을 때 저보다는 더 잘 하는 사람들로 직원을 들이게 된 것이죠. 저보다 포토샵을 잘 하고 감성이 발달한 여자 디자이너를 뽑는다던지 하는 식으로. 채용을 하는 과정에서는 교수님께서 소개를 시켜주시기도 하고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통해서 채용했습니다. 지분이나 스톡옵션을 나눈 일은 없었습니다.


Q. 본인은 어떤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A. 불도저 같은 스타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확실히 아니고, 안 되는 것에 대해서는 딱 자르고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독불장군처럼 밀어붙여서 결과로 보여주려고 합니다. 다만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왜 안 되는지 듣고 설득이 되면 내려놓습니다. 코스토리에 대한 평판 관리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남의 말을 듣고 했을 때, 안 듣고 했을 때. 또 제가 내 뜻을 밀고 진행했을 때 잘 되었을 때, 잘 안 되었을 때, 이렇게 4가지 경우의 평판을 받는 계기를 다 겪어 본 경험에 따라서, 80% 정도는 제가 원하는 것을 밀고 나가려고 하는 지금의 리더십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회사를 키우는 과정에서 어떤 위기가 있었나요?

A. 위기라고 할 만한 일은 너무나 많았고, 작년에는 메르스 사태로 인해서 중국에 수출하려는 제품들의 재고가 쌓이는 위기가 있었습니다. 자금 관련 어려움이 제일 컸지요. 저 같은 경우에 이런 위기일 때는 정면으로 돌파하는 스타일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 아내와 싸웠다면, 그날 밤새도록 어떻게 해서든 풀어야 되는 것이지요. 문제가 발생하면 피하면 안 되고 정면으로 대응을 해야 하는 성격이라서요.


Q. 코스토리를 통해서 기존의 문제들을 해결했다고 생각하나요?

A. 저는 100% 다 해결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코스토리의 ‘로즈브라이드’라는 브랜드는 임산부 전용입니다. 제 와이프가 임신했을 때의 문제를 해결했죠. ‘크로스킨’은 제가 남자이기 때문에 느끼는 문제들을 해결한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파파레서피 같은 경우에는 우리 아기들이 정말 문제없이 잘 쓰고 있기에 그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 할 수 있죠. 피부 트러블 없이 정말 잘 키우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디 데리고 나가도 역시 화장품 회사 대표 딸이네 하는 소리를 듣기도 하죠. 제가 생각했을 때는 기존에 제가 느꼈던 문제들을 잘 해결한 것 같습니다.


Q. 무엇이 대표님으로 하여금 사업을 지탱하게 하나요?

A. 가족이죠. 두 번째는 우리 코스토리 직원들이고요. 저를 믿고 가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직원들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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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터뷰는 <2016년 Young Innovators 사례 발굴 및 확산> 보고서에 실릴 예정이며, 인터뷰 내용 중 공개하기 어려운 내용이나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내용은 제외하였습니다. 본 인터뷰는 2016년 1월 28일 시점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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